요즘은 자물쇠가 대부분 디지털 방식으로 되어 있어 저장된 숫자나 기호를 기억해 놓았다가 눌러 문을 열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 아파트 현관문은 주로 열쇠를 넣고 돌려서 여는 방식이었다. 자물쇠에 꼭 들어맞는 열쇠를 넣으면 자물쇠 안에 제각각으로 정렬되어 있던 핀들이 가지런하게 배치되면서 살짝 힘을 가해도 문을 쉽게 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현관문이 아니더라도 사무실 서랍이나 자동차 등 아직 열쇠-자물쇠의 원리를 이용하는 잠금장치는 주변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철컥철컥. 아무리 열쇠를 넣고 돌려봐도 자물쇠가 돌아가지 않는다. 분명 열쇠가 맞는데 열리지 않으니 답답하고 다른 열쇠를 찾아 해봐도 안 되면 답답함을 넘어 조바심이 난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은 열쇠들이 주렁주렁 달린 열쇠 꾸러미를 어디선가 찾아와 하나씩 열어보면서 다시 시도해보거나, 또 다른 사람은 정말 아닌 것 같은 열쇠를 마지 못해 넣어 돌려보기도 한다. 그 때 기대하지도 않았던 열쇠가 단단히 잠겨 있던 자물쇠를 여는 순간이 있다.
그 때의 느낌은 마치 깨달음의 순간과도 같다. 막혔던 속이 시원하게 뚫리고 조바심에서 안도의 순간으로 빛의 속도로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잠시 안도의 시간을 가진 후 다시는 열쇠를 까먹지 않도록 열쇠를 보관할 안전한 장소를 마련해놓고 고이 모셔둔다. 열쇠를 넣고 돌려도 열리지 않는 그 기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열쇠가 때때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정도로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사람이 지금 바로 잠금장치가 열리지 않아 속상한 사람일 것이다. 온라인의 각종 비밀번호, 디지털 도어의 비밀번호를 몰라 진땀 흘리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는 마치 자기가 부정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알고 있는 기억의 한계나 도구의 한계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막힌 상황에서는 나의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 때 마땅한 다른 수단이 없을 때 여러가지 감정적 변화를 겪는다. 가볍게는 번거로움에서부터 시작해서 걱정, 난처함을 지나 불안, 좌절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금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인생의 매 순간은 내가 가지고 있는 열쇠를 현실이라는 자물쇠에 넣어 돌려지는지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손쉽게 문이 열리는 날은 운이 좋은 날, 아무리 시도해도 꿈쩍도 않는 날은 힘들고 지치는 날이다.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복잡하지만 정교한 방식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제작한 열쇠를 세심한 정신력을 발휘하여 철컥 문을 열어젖히는 날은 마음이 하늘 높이 올라가는 날이다.
삶이 원하는대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맑고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문을 찾아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열쇠구멍에 정확하게 꽂아 넣고 돌려야 한다. 그런데, 만약 매번 같은 열쇠를 가지고 모든 자물쇠를 열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만큼 끔찍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몇 개밖에 되지 않는 열쇠를 가지고 인생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열리지도 않을 문에 계속 꽂으면서 몸과 마음을 소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열쇠들은 눈으로 보면 다 비슷해 보이더라도 어떤 것은 열리고 어떤 것은 열리지 않는 것처럼, 매번 사용하는 열쇠를 바꾸는 방법도 혹시 간단한 것은 아닐까. 등잔 밑이 어둡다거나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른다는 속담처럼 나 역시 내 주위 어디에라도 있는 삶의 열쇠를 발견하지 못하고 몇 개의 열쇠를 가지고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삶의 여러 순간에서 자신있게 사용하는 열쇠가 잘 통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사용하는 열쇠를 어떤 식으로든 바꿔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비밀의 열쇠는 자신의 안에 들어 있다. 자신이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두었던 마음의 공간, 또는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만큼 낯선 공간 속에 단서가 들어 있을 것이다.
인간이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다. MBTI 성격 유형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마다 주 기능으로 사용하는 유형이 차이가 있듯이, 사고력, 창의성, 대인관계, 인내심, 성실성, 감정적 표현 방식, 긍정적 심리 등에서 다양한 유형과 수준이 존재한다. 이 말은 나 역시 장점이 영역과 단점이 영역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에게 마찬가지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머물기를 고집하지 말고 다른 곳으로 걸어가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