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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딱 한 번 본 은하수의 기억, 은하수는 꿈과 동의어다

by 먼지구름 2025. 1. 3.

 

어릴 적 한 장면이 요즘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때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겨울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별 생각없이 하늘을 쳐다봤는데 그곳에 은하수가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투명한 밤하늘에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 뒤로 희뿌연 연기같은 것이 펼쳐져 있었다.
 

 
그 때 나는 은하수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있었고, 하늘의 연기같은 존재에 대해 조금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집으로 달려갔는데, 그 때가 은하수를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꽤 오랫동안 생각나지 않았지만, 최근에 다시 그 때 본 은하수가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어릴 적 보았던 은하수가 아무리 무관심한 대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때 순간적으로 마음에 와 닿았던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맑은 날이면 습관적으로 밤하늘을 올려본다. 은하수는 보이지 않더라도 별들은 어릴 적과 같이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다. 어릴 적 보던 별은 말 그대로 '그냥 반짝이는 별'이었지만 지금 보는 별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은하수는 밤하늘에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을 마치 우유를 흩뿌려 놓은 듯 보인다고 해서 milky way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별들의 무리는 한눈에 봐도 아름답고 황홀하다. 먼지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하다. 흐르고 있는 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하늘의 강'으로도 불린다.
 

중심부에 빽빽하게 밀집한 모양은 왠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빛들의 향연같다. 만약 내가 지금 은하수를 볼 수 있다면 그 멋진 광경에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이 별들의 무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아주 다르다. 우주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되면 은하수는 인간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 거리가 터무니없이 멀어서 비현실적이다. 적당히 멀면 믿겠지만 그 스케일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오히려 믿기 어렵다.
 

그래서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있으면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과 함께 '부적응'이라는 감각이 함께 생겨난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아도 감각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이 '부적응'이라는 감각으로 인해 나는 별을 볼 때마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묘한 기분이 별을 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내가 서 있는 땅과 별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 그렇게 거대한 규모라는 사실에 아찔해 지기도 한다. 그것이 흥미롭다. 아마도 감각적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나를 바꿔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흥미를 끄는 것 아닐까. 나를 바꿔야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은 신비롭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아주 많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머리 속에서 몇차례의 연상이나 비유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은하수는 '꿈'과 많이 닮아 있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꿈을 꾼다. 꿈이란 것 역시 아름답지만 현실에서 체험하지 않은 것이며, 감각적으로 아직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는 점에서 밤하늘의 은하수와 비슷한 존재다. 만약 꿈을 이루었을 때의 마음 속 모습은 은하수의 중심부처럼 아주 빛나고 있지 않을까. 마음 속에는 은하수처럼 빛나는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꿈이라는 단어가 주는 친근한 어감과는 달리 현실의 꿈을 이루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꿈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나를 바꿔야 한다.
 

요즘 어릴 적 봤던 은하수가 떠오르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은하수를 꿈과 동의어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번 보던 그 순간에 본능적으로 은하수를 '꿈'과 연결시켰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음 속에 꿈이 차지하는 공간이 생겨나고 커지고 있다. 오늘도 마음 속 은하수를 향해 걸어가는 하루가 되기를 꿈꿔본다. 마치 은하수로 산책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