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허블 망원경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우주의 좁고 아주 어두운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촬영을 했더니 그 속에 놀라운 광경이 들어 있었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캄캄한 공간 속에 수 천개의 은하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이 역사적인 천문학 사진에 담긴 영역을 딥필드(deep field)라고 한다.
허블 딥필드(NASA/ESA)
지구에서 봤을 때 손톱보다도 작은 암흑의 공간에서 그렇게 많은 은하들이 각자 고유한 색깔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그곳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존재하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존재들이 우주의 곳곳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 사진은 우주의 역사와 규모에 대한 기존 생각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우주가 인간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광활하다는 물리적 규모에 대한 인식도 중요했지만 이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인간이 아직 잘 모르고 있는 영역이 많을 수 있다는 인지적 깨달음을 주었다는 것이다.
허블 망원경이 딥필드를 발견하고 나서 울트라 딥 필드, 익스트림 딥 필드 등의 사진들이 계속 공개되었으며, 제임스 웹으로 촬영한 딥 필드 역시 공개되었다. 미래에는 현재의 가장 고성능 망원경으로도 감지하지 못하는 우주의 미지영역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이 새로운 딥딥필드(deep-deep field)를 알게 될 때마다 인간은 인지와 감각의 한계의 틀을 더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딥필드와 딥딥필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인류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딥필드가 남아 있을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의 세계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확장이 인간의 역사를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 전체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존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내가 모른다는 이유로 또는 아직 내 눈에 보인 적이 없고 내가 체험해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정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거창하게 인간의 역사를 말할 것도 없이 나라는 존재의 역사 역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감각적 시야를 넓혀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하루만 보더라도 눈에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딥필드와의 숨바꼭질(?)은 계속되고 있다. 사람마다 감지할 수 있는 감도는 대상에 따라 다르다. 인간 관계의 형성에 뛰어난 사람이 있는 반면 추상적 개념을 발견하고 전개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기도 하고 감각적 세계를 깊이 들어가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수백억 광년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대상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육안으로 보이는 대상일 수도 있으며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수백억 광년 떨어진 천체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고감도 기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본능적인 고감도 감각기능이 존재하므로 이 감각을 활용하면 어떤 대상이라도 관측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전문 분야의 지식과 원리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두뇌감각을 집중하면 탁월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또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위대함이라는 딥딥필드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뇌와 신체의 모든 감각기능을 집중하면 우리 안에서 '순수 인간'이라는 고해상도 인간을 마주칠 수 있다. 혹시라도 오늘 하루가 힘겨웠던 사람들에게는 긍정이라는 정신적 딥딥필드에 모든 감각기능을 비추면 그 곳에서 치유와 희망이라는 은하들이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