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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질서의 종류

by 먼지구름 2024. 12. 28.

 

우리가 사는 세상에 질서가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가장 간단한 질서는 수학이다. 1 + 1 = 2라는 덧셈은 조금의 무질서도 개입할 여지가 없는 완벽한 질서가 자리잡고 있다. 뺄셈, 곱셈, 나눗셈도 마찬가지고 여기서 더 복잡해지는 방정식, 함수 그리고 미적분에도 질서정연한 규칙이 지배하고 있다. 
 
 
그럼 다음과 같은 소설이나 노래 가사는 어떨까?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 김훈 소설 '칼의 노래' 중에서 - 
 
 
그 모험은 어느 날 밤, 별들이 하늘에 핀 민들레처럼 빛나고, 별들 사이로 달이 커다란 데이지꽃 한송이처럼 떠있던 밤에 시작되었어
- P.L.트래버스 소설 '메리 포핀스' 중에서-
 
 

 
내게 불었던 바람들 중에 너는 가장 큰 폭풍이었기에
그 많던 비바람과 다가올 눈보라도 이제는 봄바람이 됐으니
- 권진아 노래 '운이 좋았지' 중에서 - 
 
 
소설이나 가사에는 수학의 덧셈과 같은 질서를 찾기는 어렵다. 얼필 보면 무질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장들 역시 인간의 뇌 속에서 생겨난 어떤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것만은 틀림없다. 덧셈의 단순한 규칙에 비해 좀 더 복잡한 규칙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관점을 바꿔서 표현해보면, 덧셈의 평면적인 질서에 비해 소설 속의 문장과 노래 가사 속의 구절은 좀 더 입체적인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다. 입체적인 질서란 그 속에 들어 있는 규칙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만들어진 질서를 말한다. 인간의 능력은 입체적인 질서를 보는 능력에 좌우된다. 


 
전문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단순함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흐르는 입체적인 질서를 감지하고 그 의미를 찾는 사람이 삶을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역시 그 속에 입체적인 질서가 들어 있다. 
 
 
결국 인간의 완성형은 단순한 평면의 삶에서 벗어나 세상과 인간이라는 입체적인 구조를 인식하고 다양한 형태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좁은 수평 평면에서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수직면으로의 탐험을 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