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침구류에 대해 하나도 아는 것이 없었던 내가 작년 겨울 이불을 사려고 매장에 들렀다가 처음 보는 이름이 많아 구매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다. 그냥 까는 이불과 덮는 이불 정도만 알고 있던 나는 토퍼며 패드며 커버며 용도를 잘 알 수 없는 이불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선택에 애를 먹었다.
덮는 이불에서도 차렵이불과 같이 낯선 이름이 적힌 가격표를 보고 나서는 이불을 고르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그 뒤로 침대 위에 까는 침구류의 종류에 대해 더 알아보고 나서 대략 다음과 같은 순서로 깐다는 것을 알았다.
침대 프레임 위에 매트리스를 놓고 그 위에 매트리스 커버를 깐다. 여기서 좀 두꺼운 토퍼를 놓기도 하고 토퍼보다는 얇은 패드를 놓기도 한다. 토퍼의 경우 보통 토퍼커버로 감싼다. 선택사항으로 방수커버를 깔거나 시트를 깔기도 한다.
어떤 침구류를 놓는지는 사람마다의 선택사항이며 순서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들 침구류의 기능을 어느 정도 알고 나자 작년 이불매장에서 물건을 사기 전 했던 고민이 별 것 아닌 것을 알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매트리스에 커버를 씌우고 그 위에 패드를 깔면 끝이다. 나머지는 없어도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면 간단히 구매할 수 있는 것을 모르면 쓸데없이 구매하기 복잡해진다.
어떤 것을 살 지 정하고 나면 그 순서대로 질서정연하게 깔면 된다. 매트리스 위에 커버를 씌우고 패드를 놓을 것이다. 매트리스 위에 패드를 깔고 그 위에다 매트리스 커버를 씌우는 바보같은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순서를 제대로 지켜 깔고 나서 옆에서 본다면 땅 속에 지질층이 순차적으로 생겨 있는 것처럼 단정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침대 위에 침구류를 까는 순서에 대해 쓴 것은 마음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적당한 비유 대상으로 이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음은 여러 종류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식과 무의식이 있다. 더 세부적으로 나누면 의식과 무의식 외 전의식, 이드, 자아, 초자아 등 복잡한 마음의 구조와 체계가 있다.
우리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위에서처럼 복잡한 구조와 체계가 얽혀 있으므로 지금 나에게 영향을 가장 크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침대에 침구류를 쌓는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마음을 깔 수는 없겠지만, 얼마나 더 질서있는 쪽 가깝게 마음을 쌓아올릴 수 있는지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
우리 마음의 지질층이 뒤죽박죽이 되면 정신적 혼란과 불안 상태에 빠지게 된다. 가장 중요한 매트리스가 가장 아래서 중심을 잡고 그 위에 쌓는 이불들을 단단하게 떠받쳐야 한다. 이것은 바뀔 수 없는 기본옵션이다.
그리고 그 위에 깔리는 것들은 기능에 따라 원래 어느 정도 순서가 정해져 있지만 순서가 바뀐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만약 매트리스를 빠뜨리고 프레임 위에 나머지 침구류들을 깔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같은 이유로 매트리스에 해당하는 정신적 구조를 튼튼히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침대의 매트리스가 두꺼운 형체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정신적 매트리스는 그 형체가 선명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연습하지 않은 보통의 감각능력으로는 확실히 감지하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정신적 매트리스를 단단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하루를 시작할 때 그리고 하루 중 일에 대한 생각이나 잡념에서 벗어나 잠시 자신의 내면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관찰해보고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마음의 구조가 짜이도록 변화를 줘보는 것이 좋다.
이런 습관을 하루에 잠시 몇 번이라도 꾸준히 해보면 마음의 매트리스를 느낄 수 있고 원하는 모양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 가능하다. 자신의 마음을 마치 침구류를 선택하고 까는 순서를 정하는 것처럼 마음을 디자인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의 구조를 안다는 것은 입체적인 관계를 안다는 것이다. MBTI가 사람의 유형을 설명하는데 일부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MBTI 유형에서 자신의 반대성향이 어떤 것인지 체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향형이라면 외향형을 사고형이라면 감정형을 실제 체험해보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숨겨진 의미를 찾는 직관형의 성향이 강하므로 감각형의 성향을 기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외향성을 기르기 위한 연습도 하고 있다.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다르므로 반대 성향을 체험하는 것은 지식으로 되는 것은 아니며, 독특한 감각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반대성향을 조금이라도 체험하고 나면 마음의 매트리스가 존재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원하는 모습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침대에 어떤 종류의 이불을 어떤 순서와 방법으로 까는 것을 아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에 대한 감각을 알게 된다. 마음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에 맞게 침구류를 까는 순서를 아는 것이다. 이런 감각을 익히면 전에는 몰랐던 마음의 구조가 보이고 혹시 지금 마음의 구조가 불안정하더라도 안정한 구조로 쉽게 바꿀 수 있다. 만약 이것을 모르면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마음의 세계를 디자인하는 것은 결국 얼마나 꾸준히 시도하는지에 달려있다. 침구류를 쌓아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잘 쌓아올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