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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가족들이 산책하다가 어린 여자아이 혼자 남겨졌을 때

by 먼지구름 2024. 11. 28.


어제 저녁 동네 공원 산책로에서 걷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 이미 어둠이 내려 앉았다. 어린 남매가 내 뒤에서 가로질러 앞으로 나갔다. 동생인 여자아이는 달리고 있었고 남자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동생은 4살쯤 되어 보였다.
 
 
둘이 웃으며 얘기를 주고 받는 듯 하더니 자전거를 탄 남자아이가 속도를 올려 먼저 앞으로 나갔다. 동생은 같이 가자고 몇차례 말했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아 산책로 모퉁이에서 사라졌다.
 
 

AI 생성 이미지

 
 
동생은 계속 오빠를 부르다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울기 시작했다. 그 옆을 지나던 어떤 여자분이 아이를 달래줬다. 
'조금만 더 가면 오빠가 있을거야.'
그 여자분이 아이와 같이 걸어가 줬다.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빠라는 녀석이 동생을 두고 가버려 울게 하다니. 그래도 다 생각이 있을거야. 잠깐 놀리다가 다시 나타나겠지. 아니면 부모가 근처 어딘가에 있겠지. 그렇지만 아이는 무섭겠다.'

 
어른인 나는 그럴 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예상이 된다. 오빠가 동생을 두고 사라질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어두운 시간이므로 부모가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별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두려움 그 자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두렵다. 오빠가 다시 돌아온다거나 엄마가 찾으러 올거라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눈 앞에 없으면 없는 거다. 그 나이대의 아이라면 다 무서워할 것이다. 
 
 
어른인 나도 눈에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 닥치면 멘탈이 흔들리곤 한다. 아이에게 닥친 상황을 볼 때는 마치 다 알고 있는 듯한 태도로 지켜보았지만, 사실 그 아이와 같은 행동을 종종 하는 것이다. 내가 여자아이를 보고 생각했던 것처럼 다른 누군가 높은 레벨에 있는 사람이 나를 보면 같은 생각을 할지 모른다.


'그거 별 것 아닌데'
'저렇게 조금만 더 해보면 될텐데'
'별 것 아닌 거 가지고 왜 저러지?'
 
 
잠시 후 앞에서 아이의 엄마와 오빠가 나타났다. 아이 엄마는 여자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역시 엄마가 있었어. 남자아이는 엄마한테 가느라 먼저 간 것이었구나.'
생각했던 대로였다. 그리고 다시 만난 세 가족이 산책로에 멈춰 있는 사이 나는 앞으로 지나쳐 걸어갔다.

 
산책로를 잠깐 걷다 보니 뒤에서 아이들이 웃으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그 아이들이다.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오고 있다. 그 뒤에 아이의 아빠도 걸어오고 있었다.
 
 
방금 전 상황이 확실하게 그려졌다. 아이의 엄마가 가장 앞에 가고 있고 아빠가 가장 뒤에 있다. 아이들이 중간에 함께 있다가 오빠가 엄마에게 먼저 갔다. 오빠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만하다. 아빠가 뒤에 있으니 동생이 아빠랑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머리 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불확실성이 사라진 가족들이 웃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다시 웃고 있는 아이를 보니 나도 마음이 밝아졌다. 


 
살다 보면, 이런 저런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 흘러간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불확실할 때 느낀 감정이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사실 지나고 보면 불확실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이 어떤 범위 안에서 움직였다.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한 것이 있었던 적은 별로 없다. 
 
 
불확실성과 확실성의 차이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마치 작은 상자와 큰 상자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은 상자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밖에 무엇이 있을까 알지 못해 불안하지만, 큰 상자에 있는 사람은 작은 상자 안에 있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별 일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불확실성과 확실성이 계속 반복되며 나의 확실성의 영역이 더 넓어지는 것만큼, 불확실성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더 여유있고 침착해지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